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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로의 초대.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465교보타워(15층) 전시기간 2020년 3월26일 ~ 2020년 4월21일 전시작가 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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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465교보타워(15층)

 

전시 전화번호: 010.4676.7214

 

전시날짜: 3월 26일~4월 21일  


 

김경원(KIM KYUNG WON)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학과 졸업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동양화) 졸업

 

개인전 11회

인사아트센터(서울), 전남대학교병원 갤러리(광주), G&J 갤러리(서울) BGN갤러리(서울)등.

아트페어 10회: 서울아트쇼(코엑스), 아트앤라이프쇼(코엑스), SOAF (코엑스)등.


단체전 120여회

 

현재: 한국미술협회이사, 한국화여성작가회.

 

전시 타이틀: 아름다운 시절로의 초대.

 

 

숨은 자아 찾기,  소담히 내려앉은 감성 언어 

 

안현정(예술철학 박사, 미술평론가 

 

김경원의 화면은 흰 여백에 써내려간 서정시를 닮았다. 하얀 백지를 좋아하는 작가의 성정(性情)이 작품 속 대상에 고스란히 녹아내린 탓이다. 계획적인 그림이 아닌 직관적 믿음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 그것은 작가의 숨은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감상자에게 치유와 안식을 제공하는 내밀한 동력이다.    

 

꽃과 새로 점철된 순수의 세계

우리는 흔히 꽃을 보았을 때, 새보다는 나비를 떠올린다. 호접(胡蝶: 나비의 턱살)이 꽃과 닿아 하나가 된 모습은 그윽한 향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공존을 통해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내 것도 없고 네 것도 없는 공존의 세계, 그것이 꽃과 나비를 하나로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의 세계 속에 나비는 없다. 향이 아닌 개체로서 모인 여러 마리의 새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예쁘게 지저귀는 모양새다. 꽃과 새, 화조(花鳥)라 불리는 이 묘한 조합은 하나이기 보다는 둘을, 전체이기 보다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꽃은 꽃답게 새는 새답게” 꽃과 나비처럼 나를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는 좌망(坐忘)을 추구하기보다, ‘지금-여기’의 나를, 참고 버티느라 숨겨왔던 순수한 동심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화 같은 예쁜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지우고 그림 속 세계로 걸어오라 손짓한다. 축적된 삶의 경험들은 열 번 스무 번 쌓여가는 중첩된 안료 속에 녹아들어 ‘작가의 노동’을 ‘아름다운 환희’로 전이시킨다. 전통안료를 유화의 마띠에르처럼 올려낸 섬세한 붓질은 힘겨운 삶을 견뎌낸 후 되찾은 젊은 날의 가능성을 담았다. 그래서 작가의 화면은 능숙한 솜씨를 사뿐히 즈려 밟은 채, 아이 같은 순수의 세계를 표상한다.  

 

 

의인화된 꽃, 분채로 올려낸 작은 세계


화중왕 모란, 군자를 형상화한 매화, 현대를 견인하는 꽃 장미, 존재감 넘치는 화려한 꽃들을 가운데 작가의 눈을 사로잡은 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흰색의 야생화였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꽃에 천착했을까. 대학 졸업 후, ‘어머니, 아내’ 등으로 점철된 시간은 작가로서 힘든 시간이었다. 중년과 맞닿은 어느 지점은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리기 위한 독백 같은 시간이었다. 서울보다 낮은 기온의 공기 좋은 곳(동백)으로 이사를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2006년, 이유모를 끌림에 의해 들어간 작은 꽃집에서 작가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구석진 곳에 내던져진 야생화 형상의 들꽃이었다. 세상을 향해 던져진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그때부터 작가는 1인 다역을 해내는 자신과 닮은 작고 흰 야생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세상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야생화의 본성을 깨달은 후, 꽃은 작가가 되었고 작가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작품 속 꽃들은 배경보다 두터운 붓질로 표출되면서도 화려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존재감 넘치는 모습으로 빛을 발한다.  

 

 

내면의 소리를 일깨운 상상 속의 새   

 

작품 속 새의 형상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 여러 감정을 노래하듯 그네들의 시선은 때론 경쾌한 때론 경건한 멜로디가 되어 마음을 움직인다. 크지 않은 작은 화단, 흰 꽃이 모여 조용히 빛을 내는 작은 공간 사이에서 꽃과 새는 동일한 크기로 만나 삶의 단면을 노래한다. 그 모습은 어떤 구속도 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담았다. 걸리는 것도, 집착하는 법도 없다. 이 꽃에 앉았다가 다른 꽃으로 이동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작가는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네 삶을 위로하고자 한다. 초창기의 새는 딱딱하고 날카롭고 왜곡된 의식화된 새의 형상이었다. 40대 초반 다시 시작한 작업에 대한 갈망은 오로지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채워져 있었다. 기존체제의 답습과 수묵담채식 추상작업으로부터의 탈피는 ‘왜곡된 형상의 새’로 현실화 되었다. 무거운 현실과 삶의 숙제들은 야생화를 발견한 시기와 맞물려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기화된 작업의지는 세상을 향한 관심 전체를 변화시켰다. 칸딘스키가 자신의 뒤집어진 작품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생각의 전이는 창밖의 소리로부터 찾아들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공기와 자연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상큼한 향기와 같은 새의 지저귐이 작가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실제 새는 발견되지 않았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던 시기, 예견 없이 찾아온 새의 지저귐은 맑고 몽롱한 내면의 소리가 되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현실과 맞닿은 이상화된 세계 

최근 작업에서는 기존 작업에서 볼 수 없던 두 가지 요소가 가미되었다. 첫째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꽃이 통일감 있는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의인화된 문인의 시각을 현대화된 음율(새가 시를 읊조리는 느낌)로 표방한 느낌이다. 색감 역시 전통 오방색(五方色)을 현대화시킨 모습으로 재해석 되었다. 공허하고 슬프다는 것은 참고 살아온 인생이었음을 반증한다. 작가는 2014년의 개념화된 <추억의 정원>시리즈에서 지우고 지워내는 작업을 보여준 바 있다. 기존 작업이 슬픈 정서를 녹여냈다면, 현재 작업은 기쁘고 유려하다. 작가는 유년시절 집에 놓여 있던 모란꽃 장신구들과 앞마당에 피어있던 작약의 화려함을 기억해냈다. 하나의 꽃으로 형상화된 작은 꽃의 세계는 견뎌온 세월을 향한 긍정적인 보상을 의미한다. 그래선지 작품은 미세한 부분까지 작가의 마음을 녹여낸다. 들꽃(야생화)에서 매화로, 좀 더 화려한 꽃으로, 앞으로 작가는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꽃의 변화상을 통해 드러낼 것이다. 

둘째는 작품 안에 일종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전치(轉置), 전위)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왕좌(王座)를 떠올리는 화려한 의자 위에 새들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내려앉아 화면 속 꽃의 세계를 바라본다. 화려한 의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왕의 귀환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La belle époque)’을 요청하는 동시에, 휴식 같은 여유를 취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은 꽃·새·의자 등을 표현한 초현실적 기법에 대해 ‘재봉틀·박쥐·우산과 같은 전혀 관계없는 물체들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낯익은 물체를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어내 이처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는 행위, 바로 이러한 우연성은 달리의 시계처럼 우리의 시·공간을 경이와 신비에 가득찬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작가의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창구, 의자는 우리에게 다른 삶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탈출구인 셈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나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작품을 하면서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 속 의자 안에서 편히 쉬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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