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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먼아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0-04-14 21:55    조회 3,20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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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군자의 현대적 변용에 대하여

    김상철

    사군자의 등장과 발전

    주지하듯이 사군자는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회화의 제재가 되는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의 총칭이다. 중국에서는 그림의 소재가 되기 훨씬 이전에 시문(詩文)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지만, 사군자(四君子)라는 명칭이 생긴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개 명(明)나라 때로 추정하고 있다. 본래 동양화의 화제(畵題)였던 세한삼우(歲寒三友:松竹梅) 중의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으로, 명나라 때 진계유(陳繼儒)가 《매란국죽사보(梅蘭菊竹四譜)》를 편찬하며 매란국죽을 사군자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사군자의 ‘군자’ 본래 재질과 덕(德)이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덕이란 미덕(美德), 풍덕(風德), 지덕(志德) 등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많이 유행하였던 말이다. 즉,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맹상군(孟嘗君), 평원군(平原君), 춘신군(春申君), 신릉군(信陵君) 등 뜻이 높은 네 사람을 골라서 그들의 덕망(德望)을 높이 받들기 위하여 부른 이름이다. 회화(繪畵)에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이 고결하고 지조 높은 기개가 있다고 하여 앞서 말한 인물들의 이름을 모방한 데 연유한 것이라 한다. 특히 매란국죽송((梅蘭菊竹松)을 오우(五友)라고 하는데 그중 소나무는 산수화에 많이 그려질 뿐 아니라 그리는 기법 또한 다른 것들과 달라 제외하고 나머지 네 가지 식물을 일컬어 사군자라 하였다.

    회화(繪畵) 소재로서의 사군자는 대체로 당(唐)나라때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북송(北宋) 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였다. 1167년에 나온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의하면 북송 때 이미 4가지 식물이 모두 묵화로 그려져 후대 문인묵화로서의 사군자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사군자화는 산수화나 인물화에 비해서 비교적 그리기가 간단하고 서예의 기법을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화가(餘技畵家)인 문인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소재였다. 또한 서예의 필획 자체가 쓴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는 원리의 연장에서 사군자 역시 그 화가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믿어져 문인화의 가장 적절한 소재로 발달되었다. 사군자의 발전에 있어 묵죽(墨竹)을 사대부의 화목(畵目)으로 발달시킨 이는 북송의 소식(蘇軾)과 문동(文同)인데, 이들은 흉중성죽(胸中成竹)의 이론을 제창하여 성정(性情)의 의경(意境)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역시 북송의 승려화가인 화광중인(華光仲仁)은 묵매화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원(元)나라 때는 몽골족에게 나라를 잃은 한족(漢族)문인들 사이에서 지조(志操)와 저항의 표현으로 널리 애호되었으며, 문인화 이론이 한층 발달하였다. 사군자의 발달은 송나라 때부터 개별적인 화보(畵譜)를 통해 일반에게 보급되다가 청(淸)나라 초기 이후 총괄적인 화보가 발간됨으로써 더욱 널리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송·원의 영향으로 사대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묵죽·묵매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계층은 물론 화원(畵員)들도 사군자를 많이 그렸다. 그리하여 15∼16세기부터는 매·죽의 그림이 청화(靑華)·진사(辰砂)·철사(鐵砂) 백자에 나타나고 난·국도 조금 늦게 백자의 표면그림으로 나타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동양화의 정신과 기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화목으로 여겨 기본적 수련과정으로서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군자를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고도 하지만, '난죽매국'으로 순서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매란국죽’의 순서는 봄(春-東), 여름(夏-南), 가을(秋-西), 겨울(冬-北)의 시간적 변역(變易)을 의미하는 것이며 ‘난죽매국’이라고 순서 짓는 것은 남(南-老陽), 북(北-老陰), 동(東-小陽), 서(西-小陰)의 공간적 불역(不易)을 의미하는 순서이다. 동서남북의 방위와 춘하추동의 계절을 하나의 시공(時空)으로 일원화시켜 충족될 수 있는 그림이 곧 사군자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아래 현세적으로는 유교적 선비사상의 충절(忠節)을 의미, 매(仁), 국(義), 난(禮), 죽(智)을 높여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또 조형적인 형상성으로 파악할 때 온 세상(萬類)의 가시(可視)적 현상(現象)은 곡선(蘭), 직선(竹)의 음양으로 대별되며, 그 중간자(中間子)인 반곡선(半曲線-菊), 반직선(半直線-梅)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사군자의 학습에 있어 대나무는 필력을 익히는데 가장 적절한 소재로 이해되며, 난은 잎이 가지고 있는 곡선의 조형미와 기초적 선과 먹의 농담을 학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또 매화는 다양한 선의 변화와 먹의 농담을 표현할 수 있고, 국화는 다른 초화나 괴석과 함께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인 구성미를 공부하는데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로부터 군자에 대한 인식은 그 신분보다는 고매한 품성에 의한 인격적 가치로서 존경되었기 때문에 사군자를 그릴 때도 대상물의 외형보다 그 자연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시되었다. 이는 곧 사군자가 그림뿐 아니라 동양의 문화와 정신의 본질적 가치와 의의를 집약시킨 하나의 표상으로서 전개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인화의 요소 가운데 첫째는 인품(人品)이고, 둘째는 학문(學問)이며, 셋째는 재정(才情)이고 ,넷째는 사상(思想)인데, 이 네 가지를 다 갖춘다면 가장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품평의 기준은 바로 이를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군자의 현대적 변용에 대하여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진 문인화는 동양미술의 다양한 장르 가운데 그 수적인 면에서나 내용에 있어서도 단연 가장 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들을 축적하고 있다. 오늘날 거론되는 동양회화의 전통은 바로 남종 문인화의 발전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진 조형적 경험과 심미 체계, 그리고 감상 습관에 다름 아닌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군자는 남종 문인화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형식으로는 시서화가 어우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표현 방식으로는 지필묵을 중심으로 하며, 내용은 문학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함축과 은유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으로 이러한 형식의 회화는 일반적인 시각미술의 감상법에 더하여 그 그림이 담고 있는 내재된 의미와 은유의 상징체계를 읽어 내야만 하는 이른바 독화(讀畵)의 필요성이 제시되곤 한다. 이는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가 비덕(比德)이라는 고도의 은유와 함축의 방법을 조형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동양회화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작가의 인품이나 덕성, 교양, 학문 등은 결국 이러한 비덕의 깊이와 함의를 구축하기 위한 전제적 조건인 셈이다. 이러한 조형체계 하에서의 사군자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특정한 의미의 상징, 즉 매화는 어짐(仁)을, 국화는 의로움(義)을, 난초는 예(禮)를, 그리고 대나무는 지혜(智)를 상징하는 의미로 읽혀지게 되는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이 반복되고 가치관의 혼돈이 야기되었을 때 과거의 문인들은 자신들의 처세와 양신(養身)의 방편으로 회화를 선택하였으며, 이러한 회화의 표현 방식을 빌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화에 대한 감상과 감회를 토로하였다. 그것은 바로 기성 가치에 대한 반발과 일정한 불변의 가치관에 대한 분명한 신념이 전제되어 있는 정신적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는 그 자체가 일정한 계급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봉건시대의 지도 계층이던 문인들이 자신들의 소회나 감상을 그림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현하였으며, 이들이 표출하고자 하였던 감상이나 소회는 바로 현실의 반영과 비판이었다. 결국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는 봉건시대의 지배계층이던 문인들이 시, 서, 화(詩.書.畵)를 통해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자신의 감상이나 소회를 표출하였던 독특한 회화 형식이었던 셈이다. 봉건시대와 근대의 구분은 사회적 계급성의 타파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 이러한 전통적 문인화는 지난 시대의 형식이자 내용이라 할 것이다.

    근자에 들어 문인화를 비롯한 전통회화가 부진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탈속적인 은일과 현실 도피적인 소극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상과 덕목들은 근대 사회에 있어서는 미덕이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급변하는 현실은 새로운 가치를 필요로 하였으며, 문화의 수요 계층 역시 문인, 혹은 사대부 계층에서 신흥 자본 계급으로 급속히 바뀌어 갔다. 새로운 문화적 수요 계층에 있어서 시, 서, 화 전통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구시대의 산물이거나, 이미 사라져 버린 고루한 계층의 유물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의 시대에는 전통적 의미의 문인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를 지향하는 이들은 대부분 작가로서의 문인화를 추구하는 것이지 문인의 여기로서 문인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시대의 문인의 장점이 시(詩)와 서(書)에 있는 것이라면 현대 문인화가들의 특장은 그림(畵)으로 귀결될 것이다. 근대 이후 시서화의 전통은 점차 분화되어 독립된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시, 서, 화의 세 가지 중 회화는 가장 표현력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머지 두 가지 요소는 이를 보완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화면 안에서의 역할은 소극적인 것이었다. 특히 본래 문인적 소양과 교양을 바탕으로 한 수양과 여기(餘技)라는 문인화 본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회화는 이러한 내용들을 담는 가장 말단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상황 하에서의 회화는 가장 주된 자리를 점하게 됨으로써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더욱이 화원과 같은 전문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을 기능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스스로의 작품들은 정신적인 것이라 판별하며, 근본적인 질의 차이를 상정했던 전통 문인화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전통 양식의 변화는 수용하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시와 서는 점차 내용 형식 중 주도적인 것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그 위상과 기능이 변하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분화하여 독립된 장르로서의 본연의 입장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시, 서, 화 일체의 전통이 나름대로의 체계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엄연히 전통 시대의 산물임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전통 시대에서 근대, 현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시, 서, 화 일체의 전통은 안타깝게도 현실에 대한 적응과 변화의 노력이 부족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화는 바로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구화가 바로 목전의 가장 유력한 가치로 인식되던 우리의 근, 현대화 과정에 있어서 시, 서, 화 일체의 전통과 같은 가치관들은 구시대적인 산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올바른 가치의 평가 이전에 이미 진부하고 고루한 것, 개혁하여야 할 것 등으로 낙인찍힌 전통적 가치들은 바로 서구적인 것들에 의해 대체되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근대화는 바로 서구화, 혹은 서구 추종의 과정이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오늘의 상황은 바로 이러한 궤적의 반영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현대에 들어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 전통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비단 근대화 과정에서의 일방적인 폐기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본래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미흡했음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양식의 답습과 생기 없는 재현은 이미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정형화되고 양식화된 사군자의 전통은 본래 그것이 지향하고 추구하였던 강렬한 시대정신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전통이란 오늘에 있어서 역시 그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이어야만 가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오로지 형식의 답습과 양식의 반복만을 계속한다면 이는 의미 없는 형식의 남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른바 시, 서, 화로 상징되는 동양의 전통적 심미관과 조형 형식은 새로운 문화 환경 속에서 필연적인 변화와 변모를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과거 획일적인 교조적 가치관의 다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예술의 다양성, 유파, 혹은 풍격의 다양성, 그리고 형식과 수단의 다양성 등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날로 개방화되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각종 유파와 풍격이 성숙되고 병존하지 않는 한 문화 예술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새로운 세대의 실험과 추구에 대하여 경계하거나 염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격려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다변화된 시대의 다양한 감성과 작업들을 획일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귀납시키려 하는 것은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문인화가 즐겨 다루던 사군자 중심의 소재들은 전통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쪽같은 선비가 드물기에 대나무를 그렸고, 현실 정치에 대한 염증을 노근란을 통해 표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직된 해석과 몰이해는 급기야 소재주의로 귀결되어 오늘날 사군자가 지니고 있는 고질적 병폐 중 하나로 고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시대의 문인이 갖는 의미는 전인적인 교양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일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교양인으로서의 안목과 견해를 가지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며 기록하는 것이 이른바 현대 문인화의 새로운 모양이 될 것이며, 이는 사군자에도 공히 적용될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사실 그간 사군자에 대한 논의의 관점과 지향은 대부분 고답적이고 수구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군자를 특정한 장르의 한 부분으로 강제하고자 하거나, 사군자가 지니고 있는 부분적인 특징을 마치 고정 불변의 원칙으로 고수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군자는 분명 여타 미술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조형적 특징과 사상을 지니고 있다. 이는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들을 자양분으로 수용하여 그 내용을 변화시키며 풍부하게 한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내용들을 고착되고 불변의 것으로 간주하여 변화와 발전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도태하고 말 것이다.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유한 특질과 내용이 변모하여 새로운 양태를 띄는 것이 아니라, 그 특색이 신격화되고 고착화되는 것이다. 오늘의 사군자가 처한 질곡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새롭게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적절히 적응하고 대응하지 못한 채 오로지 고루한 전통답습의 폐단으로 흘러 경직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일단의 비판과 반성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의 발전이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비판과 반성을 통해 동력을 얻게 마련이다. 이는 전환기, 혹은 변혁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어떤 시기나 전통에 대한 변혁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항상 수구세력보다 열세였다. ‘온고’(溫故)의 가치가 ‘지신’(知新)보다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온고’는 의미를 갖지 못함은 자명한 일이다. 전통에 대한 재인식은 모두 현실적 수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철저히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게 마련이다. 이는 그저 개인의 충동적인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군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부름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 할 것이다.

    수주 변영로 선생은 1920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동양화론>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문학, 철학, 음악, 조각, 건축물 등 모든 것이 다 그럴 것이지만, 특히 회화로 말하면 일개인의 사상, 감정이나 일민족의 사조를 아무 매개 없이 직접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고 그 시대의 회화를 보고 그 시대의 문화상 소장(消長)과 그 시대의 국민의 사상과 감정의 취향이 여하하였던 것을 추지하는 것이다.

    연즉, 「타임 스피릿(Time Spirit)」(시대정신)은 회화에서 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의 혈(血)이며, 육(肉)이며, 향(香)이며, 색(色)이다. 고로, 시대정신의 발로가 없는 예술은 사예술(死藝術)이며, 허위의 예술일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는 시대정신을 잘 통찰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자기 예술의 배경으로 하고 근거로 하여 결국은 모든 시대사조를 초월하는 구원불멸의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연이(然而), 여러 독자는 잠깐 동양화를 보라. 특히 근대의 조선화를. 어디 호발(毫髮)만큼이나 시대정신이 발현된 것이 있으며, 어디 예술가의 굉원(宏遠)하고 독특한 화의(畵意)가 있으며, 어디 예민한 예술적 양심이 있는가를. 단지 선인(先人)-물론 그네들은 위대하다-의 복사요, 모방이며, 낡아 빠진 예술적 약속을 묵수함이다.”

    비록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글이지만, 그 맥락에 흐르는 준엄한 충고와 질책은 오늘의 사군자에 그대로 적용되어도 별반 그릇된 것이 없다 할 것이다.

    전통의 재발견의 전제는 영원불변한 특질에서 그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부하고 이해하여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거울로 삼아 더욱 높은 차원에 이르도록 촉진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재발견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즉 긍정적인 가치를 가진 것과 부정적 가치를 가진 것이다. 전통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 요인을 충분히 긍정하여 그로 하여금 새로운 자태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시킴으로써, 현대 생활에 적극적이고 유익한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전통 재발견의 긍정가치이다. 반대로 전통 속에서 과거 생명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때가지나 이미 진부하고 생명력을 잃은 요인을 더욱 부정하여 그것의 역사적 지위와 현재의 폐단을 지적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지향할 방향과 창조의 시발점을 분명히 인식케 한다면 이것은 곧 전통 재발견의 부정 가치일 것이다. 비록 이러한 전통의 재발견은 다양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게 마련이지만 그 근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잠재된 흐름을 발굴하여 흐리고 탁한 부분을 맑게 하고, 흐름을 바르게 유도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현대미술의 커다란 흐름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사군자가 당면한 도도한 격랑 속에서 자신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위치를 분명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분명하고 정확한 자기 위치의 확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조망함으로써 전통의 재발견은 비로소 풍부하고 창조적인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정보혁명의 시대에 진입해 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세계적인 조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억지나, 늦은 걸음걸이로 그저 옛것의 주위를 배회하며 회고나 하는 것은 모두 적절한 사고나 위치 설정이라 할 수 없다. 걸음이 너무 늦으면 따라 잡을 수 없고 너무 빠르면 역시 넘어져 좌절이 오게 마련이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시대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오로지 이러한 분명한 인식만이 비로소 가장 적절한 관찰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군자는 분명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동양회화의 전통의 근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의 사군자, 혹은 문인화는 전통미술의 적자이자 실체로서 응당 지녀야할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존재가치마저 회의되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처해있다 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질곡의 상황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것이 현대미술로서 건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저 사군자가 전승되어진 전통적 형식이기에 존숭되어야 한다는 진부한 논리나, 그 안에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내재되어 있다는 모호한 이론으로는 오늘의 어려운 상황은 타개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과 깊이 있고 분별력 있는 반성을 통해 사군자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내용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과 오늘의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적극적인 실천만이 오늘의 질곡을 타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처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