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노방
-한국여성작가가 처한 오늘의 지형을 넘어서
양은희 (전시기획자/미술사 박사)
글로벌 시대라고 일컫는 오늘날 현대미술은 다양성을 표방합니다. 청바지 천에서 머리카락까지, 유화에서 도예까지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고 있으며, 뉴욕에서 뭄바이까지, 서울에서 리오 데자네이로까지, 전 세계의 곳곳에서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들은 이러한 재료와 기법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은 비엔날레, 미술잡지, 경매, 아트페어, 그리고 창고에서 작가 작업실까지 여러 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온갖 형태와 내용을 담아 인류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1) 글로벌 시대의 현대미술
최근의 현대미술을 분석해 보면 각 지역의 차이, 작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략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Terry Smith, 2009).
① 스펙터클을 지향하며, 변화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온 작업들로 다미엔 허스트, 타카시 무라카미 등 스타작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미학을 만들어내는 부류가 있으며,
② 글로벌 미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주와 노동, 환경과 생태,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등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구체적인 인간의 상황을 설명하려는 알프레도 자, 프란시스 앨리스 등의 작업들이 있고,
③ 개인의 존재와 생존, 일상성과 주체에의 몰두로 거대한 의미부여보다 겸손한 (때로 소극적인) 작업을 지향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들은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기도 하고 중간지점에서 타협된 변종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작가가 처한 문화권의 미술전통의 무게를 반영하기도 하고, 지난 세기의 모더니즘을 재고하기도 하며, 특히 한국처럼 전통문화를 보유한 곳에서는 여전히 전통문화자산을 개인의 꿈과 욕망, 사회적 비판, 글로벌 미학과 연결하여 창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작업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2) 글로벌 시대의 한국여성작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는 주제와 형식에 대한 탐구는 여성작가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동안 여성의 경험, 여성성에 대한 자각,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반성 등 지난 100여 년간 축적된 여성작가들의 작업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태도와 결합되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성작가의 작업은 미국의 1970년대 여성주의 미술이후 성장한 정치적 미술부터 기존의 남성작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미술언어의 뒤바꾸기까지 다양한 미술을 토대로 풍부한 자원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복잡한 문화적 경험까지 작업의 개념화에 첨부가 되면 오늘날 태어나는 여성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품을 수 있을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바야흐로 창의적 예술을 위해 넘지 못할 성역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작가가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완전히 체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에서 느끼는 상황은 거시적인 관점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특히 현대미술의 언어를 사용하며 남성작가와 경쟁해야 할지, 아니면 여성의 본질을 고려한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여성성을 작품에 재현하게 될 때 여성의 영토를 고집하는 급진적인 작가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여성작가끼리 모여 작업하다보면 주류미술계로부터 소외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루스 이리거라이,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 프랑스의 주요 여성철학자들이 주장한 여성적 말하기와 글쓰기가 여성작가의 목소리를 담아낼 때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태도가 가져올 파장과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가 없으며, 여성과 남성의 구도를 의식하고 여성적인 창작을 하게 될 때 예술이 남성중심적 제도를 비판하는 정치적 도구로 변모하면서 예술가로서 자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심적 부담이 여성작가에게 다가옵니다. 물론 이 부담감은 저와 같은 여성 큐레이터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여성작가는 이러한 오늘의 지형 속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떤 공간에서 자신의 작업을 펼쳐야 할까요? 이미 주제, 형식, 소재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이 축적된 전통을 토대로 여성작가로서의 잠재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합니다. 여성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여 미니멀 추상부터 충격적인 이미지 뒤집기까지, 관조와 명상에서 행동주의까지, 미술전통을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것부터 즐거운 유희까지, 풍경과 정물화의 재발견에서 산수, 매난국죽의 차용 및 혼성모방까지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심리적, 사회적 매카니즘 속에서 엄격한 자기검열을 행하고 창작이라는 고통스러운 수행 과정을 거치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좌절을 딛고 일어나 용기있고 신바람 나는 일상으로서의 창작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활동하는 글로벌 여성작가들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려움과 부담감보다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이 여성작가들은 현대미술의 여러 동향 속에서 변화의 바람을 더욱 거세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 매체의 다각화, 정치적, 사회적 환경의 역학관계에 대한 개인적 반응, 스펙터클의 활용, 인간의 생태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 등, 남성작가가 중요시하는 문제를 여성들도 자신의 입지에서 섬세하게, 정교하게, 치밀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의 여성작가는 글로벌한 다양성을 창출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를 맞고 있습니다. 좁게는 한국, 넓게는 아시아, 그리고 전지구적 세계를 향해 한국의 ‘입지적’ 특수성, 환경적 특수성을 포용한 작업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의 여성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전시들은 그동안 동일한 담론이나 가치체계, 또는 형식주의로 명맥을 유지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마치 개나리의 노랑이 진달래의 분홍과 경쟁하듯이,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는 복잡한 여성을 위한 가치들, 여성작가를 위한 가치를 토론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구미를 통해 수입된 남성중심의 미술의 언어를 교조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더 이상 유용하지 못하며, 그 언어를 소화하고 그 언어의 틈새를 찾아내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여성을 위한 가치가 서구의 백인여성의 것만이 아니었고 한국의 여성도 공유하고 토의하며 의미있는 생산을 내놓을 수 있었듯이,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의 여성작가가 또 다시 새로운 가치를 시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담론이나 미술이 특정지역이나 문화의 소유가 아니며, 특정집단만이 보유하는 이념이나 자산이 아니며, 글로벌 시대에 여러 지역을 결합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의 체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입니다. 글로벌 환경을 고려하고 한국의 시간과 공간에 구체적인 작업이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작가들에게 필요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위해 최근 여성계의 변화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3) 글로벌 시대의 여성
글로벌 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확실히 과거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여성 문제를 이슈화했던 미국뿐만 아니라 제 3세계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입지가 견고해졌으며, 가장 보수적이었던 정치 분야에서도 여성총리, 대통령이 등장하고, 문화예술에서도 여성미술관장이 등장하는 등 여성의 등장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가시적 변화는 그동안 여성의 권익과 여성적 사고를 주장해온 페미니즘이 더 이상 주목할 만한 이념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우리를 자아도취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시적 결과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여성들이 치열하게 남성과 경쟁하면서 얻은 것이며, 일부 상징적인 지위가 여성의 몫이 되었다고 그 몫이 영원히 여성의 것이 되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여성은 여전히 여성의 권익과 여성적 사고를 필요로 하며 일부에서는 과거처럼 맹렬하게 정치적 변화를 삶에 실천적으로 이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미국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치열하게 전개된 지난 세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여성의 성과를 찾는 작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등장했던 미국의 페미니스트들 작가들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으며,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글로벌 시대의 여성주의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구와 미주대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페미니즘의 장소가 다각화되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여러 지역으로 퍼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타이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시아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가 전지구적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는 다양한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며, 그동안 제1세계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제3세계의 여성들과의 상호 공동 네트워크를 통해 활동을 넓혀가야 할 때라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각각의 여성이 속한 지역별 문제를 숙고하고 해결하는 한편 지역별 과제를 공유하며 의미있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실천방식이 필요하다는 자각의 발로입니다.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념을 추구하고 그 이념이 작용하는 현상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각 지역의 구체적 문제를 직면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지역화된 목소리를 지향하려는 자세가 요구되는 이 시대는 담론과 사고, 가치와 의미는 복수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부각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페미니즘은 신자유주의의 확산 속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처한 여성을 주목하면서 젊은 여성들이 성무역 (sex trade)에 이용되어 인도와 같은 아시아의 중소도시를 떠나 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문화권(미국, 일본 등)의 카바레 댄서나 매춘부로 살아가며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이후 경제활동을 근간으로 한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념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민족, 계급 등 그동안 이념 밑에 억눌려있던 이슈들이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 개편을 동일시하고 경제활동 속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화가 강화하는 분위기가 확장되자, 이러한 새로운 경쟁구도 속에서 여성들은 빈곤층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아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와 같은 문화이론가들은 글로벌화의 전선에서 경제현장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여성의 처지에 주목하면서, 과거와 달리 글로벌 시대를 이끄는 “유일한, 중요한 차이는 여성의 이용, 남용, 참여, 그리고 역할이다.”(스피박, 1997, p.92) 라고 설명하며 글로벌화를 통해 세계인이 국적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탈영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탈영토화의 배경에는 돈, 상품, 인간이 끊임없이 전세계로 서로를 쫓아다니는 구조가 포함되어 있다”(아파두라이, 1996, p.38)고 주장합니다. 자본의 획득을 위한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 앞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성, 그 외의 제3세계 여성은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 빈민층 인구는 약 13억이며 그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70%에 달한다고 하며, 빈곤층 여성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같은 지역에서는 여성 1인이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이 정치, 경제적 변화에서 착취와 불평등의 위치에 놓이는 시대에 여성들은 국제적 관계, 기관간의 협력을 통한 자매애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으며, 여성을 공통분모로 하는 조직을 만들고 고유한 정치적 목적을 세워서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화를 모색하여 파급효과를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구축에는 글로벌 환경을 의식하면서도 각 지역의 시간과 공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입지적 페미니즘 (locational feminism)” (Friedman, 2001)이 필요하며, 지역이 처한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종교, 국적 등의 문제는 여성들 간에도 서로 다른 위치를 부여하며, 서로 다른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4) 불평등한 미술제도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고 미술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작가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창작은 위에서 언급한 최근의 미술동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낳는 뚜렷한 가시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여성작가가 생산한 모든 창작물은 다양성을 표방하는 글로벌 시대에도 평등하게 유통되지 못합니다. 자유로운 무역거래의 루트를 따라 문명과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 글로벌 시대에 예술은 상호존중을 토대로 각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다양한 예술을 창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주류, 비주류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모든 예술이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글로벌 미술시장에서의 예술작품 유통량에서 잘 드러납니다.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대접받는 100인의 작가 리스트 (Art in Culture, 2012년 3월호)를 들여다보면 미국, 중국, 유럽 주요국가 출신의 작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디오피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이 국명이 1개씩 걸쳐있을 뿐이며 한국작가는 1명도 없습니다. 즉, 미술시장은 전 세계의 모든 지역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를 공평하게 받아들이는 평등한 곳이 아닙니다. 그 100인의 작가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여성작가 역시 10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 여성작가들 조차 미국, 영국 등 기존의 제1세계 출신이며 남아공 출신의 말렌 뒤마 정도가 유일한 비주류 지역출신의 여성작가입니다. 따라서 미술시장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1세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외의 지역출신의 남성작가나, 여성작가에게는 평등한 곳이 아니라는 뼈아픈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미술시장의 편향된 취미가 글로벌 시대의 다양한 미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현실 때문에 대안적인 미술 매카니즘의 역할이 절실한 때입니다. 특히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여되는 비엔날레와, 언론의 중립성을 지향하는 미술잡지는 미술시장의 동반자로서 머물기보다는 비판자이자 견제자로서의 역할까지도 수행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국내외의 비엔날레는 어느 정도 미술시장이 외면하는 작가를 소화하고 있고, 여성작가의 수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견제기능은 큐레이터가 미술의 상업논리에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미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의식을 확고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엔날레도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여전히 여성작가의 비율이 대략 30%를 넘지 못합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모두 여성 큐레이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여성작가가 포함될지 주목할 일입니다.) 다양성의 완전한 발현은 여전히 예술가가 지향하는 모토일 뿐 예술가의 현실이 아닙니다.
개인적 차원의 예술제작, 작가의 자아실현을 위한 환경이 해결되고 여성의 창작물이 탄생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면 이 모든 노력은 반쪽의 성공입니다. 개인전, 그룹전,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 수많은 전시형식에도 불구하고 여성작가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창작물은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그저 작업실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여기서 여성작가를 위한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기존의 제도를 통한 활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개인적, 집단적 활동을 통해 다각적인 창의성의 발로를 모색해야 하며, 그러한 불만족스러운 제도에 대한 비판적 대응 및 새로운 공간 창출에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성작가들이 모여 만드는 전시가 아직도 필요합니다. 특히 과거와 달리 개개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전시기회가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전시처럼 여성작가의 모임을 통한 정보교류,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창작활동을 서로 격려하고 동시에 보다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일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작업이 진부함과 반복의 틀을 벗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 긴장하고, 개념과 형식의 경계선에 서서 실험적 정신을 포용해야 합니다.
5) 백화노방
이번 전시의 주제는 ‘다양성을 표방하는 글로벌 시대의 불평등한 현실을 딛고 한국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목소리(들)’입니다.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여 전시의 제목은 ‘백화노방 (白花怒放)’으로 삼았습니다. 백화노방은 백가지 꽃이 서로 경쟁하듯이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고자 몸부림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표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학파의 등장으로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다양한 학문의 논쟁이 결국은 중국의 지혜를 결합하면서 사상이 성숙해짐을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글로벌 시대의 미술이 각국의 모든 작가들이 경쟁적으로 저마다의 목소리와 제스춰로 나타나고 있어서 가히 춘추전국시대에 비유될 수 있다는 착상에서 비롯된 제목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여성작가도 여성에게 불편한 진실 때문에 좌절하거나 체념하기 보다는 그 불편함을 지적하고 분노하고 동료와 위안을 찾고 그래서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참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기반성을 통해 작업의 반경을 넓히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창의력의 영토를 종횡으로 넘나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사상이 경쟁하는 시기는 혼란의 시대이자 기회의 시대입니다. 특히 미국, 유럽에서 비롯된 현대미술이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문화권에서 등장한 예술이 현대미술의 얼굴을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란, 인도 등 미술의 지형도에서 간과되었던 지역에서 많은 여성 작가들이 대거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작가도 자신의 사고와 지혜를 용감하게 드러내고 논쟁하면서 글로벌 시대의 여성작가로서 커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주제와 핵심어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가다듬고, 작품을 만드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 활동을 통해 여성작가의 전시기회를 확보하다 보면, 이 혼란의 시기가 지난 후 백가지 꽃이 모두 능력을 발휘하여 만발하게 핀 백화난만 (白花爛漫)의 시절이 도래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