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변신: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선승혜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에술학부 겸임교수)
●문제의식: 스스로 등진 우리의 가치
한국화의 변화가 시급하다. 잃어버린 전통의 힘이 부활을 촉구한다. 한국현대미술에서 사진과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급격이 대두되는 현황에서, 전통적인 기법과 소재가 장식적 소품으로 간주되는 현대미술계에 변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수묵화의 지위를 비교해 보자. 중국의 현대미술은 수묵화전통이 중요한 핵심으로 권좌를 유지하며, 일본은 장식적이고 유미적인 일본화가 여전히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현재 한국은 한국화가 설 자리가 애매하다. 20세기초 근대라는 전환기에 유럽문화가 새로운 국제적 문화로 이식되고 조선문화가 진부한 과거로 인식되면서, 한국화는 권위를 잃어버린 조선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전통과의 단절은 그 누구에 의해 강요된 것도 아니었고,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문화가치이다.
20세기의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정치적 성숙으로 한국문화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나의 문화적 정체성이 국제무대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되는 시점이다. 현재에 우리 한국화가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한국현대미술계는 스스로 유럽 현대미술 비엔날레 중심의 아젠다에 맞추어 한국현대미술이 재편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막상 유럽과 미국 등의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는 어떠한가. 한국에 대한 이해는 3가지로 요악된다. 첫째, 동아시아에서 중국중심의 역사, 일본의 근대제국주의를 극복하며 면면히 역사를 이어온 국가, 둘째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데올로기 분단국가, 셋째 K-POP로 대중음악과 드라마의 인기로 급부상한 한국문화이다.
한국화는 국제적 문화질서 속에서 어떻게 자기변신을 해야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엄중하며 진지하다. 특히 여성의 진출이 각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두드러지는 현시점에서, 한국화를 리드하는 여성작가들은 어떤 변신을 지향하는가? 여성의 변신이 무죄라는 광고문구처럼, 이제 재기발랄한 한국화의 변신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신나는 과제이다.
●아젠다 1: 한국화의 가치 복원을 위한 3가지
지향점 『대학(大學)』
배움의 연속이다. 한국화도 배움의 연속으로 설정한다. 배움의 목적을 조선 500년을 통해 가장 폭넓게 독서된 『대학(大學)』에서 한국화의 가치를 찾아본다.
첫 번째 한국화는 "밝은 마음을 밝히는 데 있다[明明德]"
한국화는 “밝음”을 세상과 공유하는 데에 있다. 한국화는 타고난 밝은 마음으로 그려진 예술로 한국화로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밝게 하는데 그 가치가 있다. 이러한 밝음[明]은 중국의 고전인 대학 이전에 면면히 존재한 한국 고대 문화의 밝음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바로 한국인의 문화적 DNA이다. 밝은 감성이야 말로 한국화의 근본 사상이다.
두 번째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데에 데 있다[親民]”
“밝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밝음”을 세상사람들과 나누는데 가치를 둔다. 21세기 대중의 시대에, 한국화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다가가서, 세상의 각박함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 매일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한다. 밝은 마음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감성 그 자체이다.
세 번째 " 궁극의 가치에 도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止於至善] "
한국화로 밝음 마음을 세상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단숨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평생을 통해서 노력하고 지향해야 할 궁극의 가치이다. 궁극의 가치는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다음 4가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아젠다 2: 한국화 작가의 4가지 준비 과정
한국화가 자신이 스스로 갖추어야 할 4가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격물(格物), 세상만사를 열심히 공부한다.
사회가 마주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한국화의 가치는 세상만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적 이슈를 탐구한다.
둘째, 치지(致知), 지식을 넘어 지혜에 도달한다.
세상만사의 탐구를 거쳐, 지식을 넘어서서 지혜를 추구한다. 지혜는 정답이 있지 않다. 유연하면서도 사람들의 밝은 마음을 밝게 비추어주는 삶에 대한 지혜를 한국화를 통해 전달한다.
셋째, 성의(誠意) 의욕을 정성껏 한다.
한국화가들의 적극적인 의욕을 촉구한다. 소극적 개인전이나 단체전을넘어서서, 한국화의 전시를 통해 세상을 지혜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전파한다는 예술의 기능을 복구하는 데에 정성껏 노력한다.
넷째, 정심(正心) 밝은 마음을 지킨다.
한국화가의 세상만사에 대한 탐구, 지혜의 발견, 정성어린 의욕은 우리의 밝은 마음을 잘 지켜나가고, 세상사람들의 마음도 밝게 한다는 근본을 지킨다.
●아젠다 3: 한국화의 가치 복원의 4가지 범주
한국화의 가치 복원은 4가지 범주로 양식화 된다.
첫째 “수신(修身)” 밝은 마음과 건강한 몸
한국화 중에서 “개인”을 소재로 한 작품. 기본적으로 초상화이다. 개인의 밝은 심리와 건강한 몸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추구한 작품이다.
둘째, “제가(齊家)” 소중한 가족
한국화 중에서 가족과 같이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 기본적으로 군중을 그린 작품이다. 세상사람들을 제 피붙이와 같이 소중하게 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셋째, “치국(治國)” 행복한 사회
한국화 중에서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작품. 사회적 이슈를 시각화하여, 그것이 비판적 관점이든 긍정적 관점이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행복한 사회라는 점에서 예술을 통해 진지한 메시지를 세상에 던질 수 있는 작품이다.
넷째, “평천하(平天下)” 조화로운 자연
한국화 중에서 가족과 같이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개인, 가족, 사회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자연적 생태계의 일부로서 자연과 조화되어 사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아젠다 4: 한국화의 형식의 다양화
한국화의 가치를 재고한 후, 이제는 형식의 혁신을 추구한다. 가치는 시각적 표현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각화되지 않는 가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제는 21세기에 맞는 한국화 형식의 변혁을 도모한다.
첫째, 골법용필(骨法用筆) 선의 힘을 극대화 한다.
둘째, 응물상형(應物象形) 형태 묘사의 세련됨을 추구한다.
셋째, 수류부채(隨類賦彩) 채색을 다양화 한다. 색 자체가 상징이다.
넷째, 경영위치(經營位置) 마케팅[경영]의 컨셉을 새롭게 부여한다.
다섯째, 전이모사(傳移模寫) 한국화의 신경향을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아젠다 5: 현대 한국화의 전시구성
제1부 “수신(修身): 맑은 마음과 몸”에서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품을 중심으로 한다. 또 한국화의 주요한 모티프가 된 화조화를 작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통해 수신을 지향한다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수신의 범주 속에 화조화를 포함시켜서 전시한다.
제2부 “제가(齊家): 소중한 가족”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소외된 사람들을 감싸안는 작품을 소개한다. 또 여성들이 가정을 위해 섬세한 노력을 하면서 발견하고 그려낸 기물화를 “제가”의 범주에 포함시켜서, 한국화로 그린 기물화가 내포한 가치를 격상시킨다.
제3부 “치국(治國): 온화한 사회”는 사회적인 문제점의 해결과 미래를 발전가능성이라는 주제를 한국화가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여성 한국화가들이 “치국”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인 주제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치국을 넘어선 조화로운 자연에 더욱 관심이 많다는 현상분석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제4부 “평천하(平天下)” 조화로운 자연
한국화에서 천하가 다스려진 모습은 자연, 즉 산수화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한 미적 태도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천하를 다스리고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마무리 “명명덕(明明德): 새로운 가치를 밝혀, 한국화 유행을 시작하라”
밝은 가치로 새롭게 무장된 한국화를 유행시켜, 세상을 밝게 만들어 내는 21세기 한국화의 신(新)양식을 만들어 내는데 바로 한국화 여성작가들이 있다. 한국화의 새로운 태도가 형식이 되고, 유행이 양식이 된다. 우리 한국화 여성작가들은 시대의 예술가로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전파시킬 수 있는 혜안의 표현력을 가진 사람이며, 이번 전시로 새로운 유행의 단초를 연다.
* 참고 텍스트 『대학(大學)』
대학 교육의 3강령(三綱領)인 ‘명명덕(明明德)·친민(親民)·지어지선(止於至善)’과 이 3강령의 실천 세목(實踐細目)인 8조목(八條目)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내세우고 있으며 전문 10장에서는 이 3강령과 8조목을 해설하고 있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善治其國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그러므로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고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욕치기국자 선제기가)
그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하고
欲齊其家者 先修其身(욕제기가자 선수기신)
그 집안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지신의 수양을 해야 하고
欲修其身者 先正其心(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자기지신의 수양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로 해야 하고
欲正其心者 先誠其意(옥정기심자 선성기의)
그 마음을 바로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해야 하고
欲誠其意者 先致其知(옥성기의자 선치기지)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에 힘써야 하고
致知在格物(치지재격물)
지식에 힘쓰고자 하는 것은 만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함에 있다.
格物而后 知至(격물이후 지지)
만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한 이후에 지식이 지극히 되고
知至而后 意誠(지지이후 의성)
지식이 지극히 된 이후에 뜻이 성실히 되고
意誠而后 心正(의성이후 심정)
뜻이 성실히 된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心正而后 身修(심정이후 신수)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자신의 몸이 수양이 된다.
身修而后 家齊(신수이후 가제)
자신이 수양된 이후에 집안이 잘 다스려지고
家齊而后 國治(가제이후 국치)
집안이 잘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잘 다스려 진다
國治而后 平天下(국치이후 평천하)
나라가 잘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평화롭게 된다.